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 장자 (문단 편집) == 극중 행적 == 패서 지역인 [[신천군|신천]]의 부유한 [[호족(한국사)|호족]] 중 한 명으로 [[상인]] 출신인 만큼 중요한 무역항인 [[송악]]을 다스리는 왕씨 집안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송악 성주 [[왕륭(태조 왕건)|왕륭]]의 아들 [[왕건(태조 왕건)|왕건]]과 자신의 딸 연화가 어렸을 때부터 [[혼인]]을 약속했다. 그러나 왕륭은 아들인 왕건이 [[황제]]가 될 운명이라 확신하고 있었고 연화에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국구[* 왕 혹은 황제의 장인.]가 되기에는 강 장자의 그릇이 너무도 작아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을 것을 염려해 혼사를 차일피일 미뤘다. 그렇게 세월만 보내던 차에 황비감을 물색하던 [[종간(태조 왕건)|종간]]이 연화가 귀인의 상임을 알아보고 적극 그녀를 추천했고 딸인 연화 본인은 물론 아내 백씨마저 왕씨 [[가문]]과의 약조를 생각하자 했으나 강 장자는 [[황실]]의 외척이 될 생각에 한 눈이 팔려 국혼을 택한다. 왕건이 집안의 재산을 털어 송악에 황궁을 건축하고 [[궁예(태조 왕건)|궁예]]와 연화가 혼례를 올리자 왕건에게 과거에 대해 함구해둘 것을 부탁할 정도. 황실의 외척으로 대접받게 되자 얼마간은 별 문제없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것도 잠시. 왕륭의 예상대로 그릇과 소견이 좁고 귀가 얇아 어리석은 모습을 계속 보여줬으며 연화가 [[태자]]들을 낳자 부귀영화가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연화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를 잇겠다며 양아들을 들여 대놓고 자랑하다가 연화와 궁예 모두에게 한 소리 듣게 된다. 거듭 무훈을 세우는 왕건을 시기하며 폄하하는 발언을 곧잘 해댔으며 [[아지태(태조 왕건)|아지태]]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궁예가 민생을 피폐하게 하자 신료들이 그를 염려하며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황명이면 무조건 따라야지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하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급기야는 궁예가 독화살을 맞고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병부령 [[복지겸(태조 왕건)|복지겸]]을 찾아가서 다음 황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복지겸은 보위 이야기가 나오자 기겁하는 반응을 보인다.] 아지태와 자주 만나며 태자를 황제 자리에 앉힌 후 자신이 [[섭정]]에 앉는 꿈을 꾸기에 이른다. 내원 종간과 내군장군 [[은부(태조 왕건)|은부]] 휘하 내군의 감시의 눈이 곳곳에 번뜩이고 있는데다 궁예의 성미를 잘 아는 연화로부터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당부를 여러 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이 많아서 나쁠게 뭐냐며 막 나가는 행보를 거듭하는데 그러던 중 궁예가 도인의 기 치료로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이에 종간은 그간 있었던 모든 신료들의 불미스런 움직임들을 보고하면서 [[살생부]]를 올리는데 그 중에는 강 장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강 장자를 노망난 늙은이로 취급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는 했지만 만약 궁예가 죽을 경우 위험 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처단하려 했던 것. 이후 궁예는 독화살을 맞은 후유증으로 인해 수시로 통증을 느끼며 환각에 시달리는 병을 앓는다. 무리한 철원 천도와 북벌 준비로 민심은 최악으로 치닫고 아지태는 궁예로부터 많은 권한을 위임받음과 동시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처형을 당할 수 있다는 위협을 은연 중에 받게 된다. 이에 아지태는 왕건을 다음 황제로 포섭하려 했지만 왕건이 굳게 거절하자 차선책으로 강 장자를 역모에 끌어들인다. 아지태는 불시에 궁예를 시해하고 종간과 은부를 제거한 뒤 어린 태자를 보위에 앉힐 계획을 세웠고 강 장자는 자신이 섭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릴 망상에 젖는다. 그러나 아지태의 수하인 입전과 신방이 궁예의 [[관심법]]을 두려워한 나머지 계획을 종간에게 밀고했고 결국 두 사람을 제외하고 역모와 관련된 자들이 전부 하옥되기에 이른다. 궁예는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아지태를 죽이기를 망설였기 때문에 시중으로 임명한 왕건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사건을 심사하고 판결하라고 명했고 왕건은 핵심 인물인 아지태는 처형하되 역모에 가담한 다른 자들은 모두 살려보내는 관대한 평결을 내리며 강 장자 역시 3년간 근신하라는 처분을 받고 집에 돌아온다. 이 정도로 끝난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는 아내와 달리 그는 왕건의 평결에 오히려 불만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권력욕을 버리지 않으며 과욕을 부린 것에 대한 아내의 책망에도 "미친 황제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다"라고 적극적으로 합리화하며 큰소리를 친다. 하지만 궁예는 아지태가 죽기 전 마지막 발악으로 남기고 간 말[* 왕건과 연화가 과거에 혼인을 약속한 사이였으며 강 장자가 목숨을 걸고 어린 태자들을 보위에 올리고자 했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말이었는데 궁예는 두 태자가 친자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아지태도 그런 의도로 말하였다. 연화가 [[임신]]을 한 것은 황후가 되고 몇 년 뒤 궁예가 순행을 하던 중이었으니 태자들은 궁예의 자식이다. 강 장자는 섭정을 하며 권력을 쥐려고 하기 위함인데 궁예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의심할만한 사항이니 [[자업자득]]이다.] 때문에 점차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관련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캐묻던 궁예는 강 장자에게도 최웅을 보내 다시 질문을 던졌고, 결국 아지태 사건을 다시 친국하기로 결정한다. >'''잔 받으란 말이오!''' >---- >궁예가 강장자를 하옥하기 직전에 강 장자한테 술을 한 잔 줄 때 고함을 지르며 한 말. 궁예는 따로 강 장자를 불러 왕건으로부터 돌려받은 법봉까지 꺼내들며 정혼에 대해 묻고, 덜덜 떨며 잡아떼던 강 장자에게 궁예는 그래도 장인이라고 시간을 줄 테니 자백하여 목숨을 건지라고 경고한다. 그렇게 임춘길을 제외한 아지태 사건 당시 잡혀갔던 주모자들 모두가 하옥된다. 이 소식을 은부한테 들은 종간은 지금 잘못하고 있다며 우려했고 종간은 어떻게든 궁예의 정신병을 고치기 위해 백두산에서 내려온 도인을 불러 영초탕(靈草湯)을 지어 궁예한테 권하고 곧바로 영초탕을 마시고 3일 뒤에 깨어난 궁예는 병은 씻은 듯이 나은걸로 보이지만...[* 도인의 경우 암살자로 오해한 궁예에 의해 참형을 당한다.] 이미 예전 궁예의 모습과는 180도 다르게 [[성격]]이 더 변해버린 상태였다. 물론 영초탕을 마시기 전에 나타났던 그 석총 및 아지태를 운운하며 칼을 휘두르고 날뛰는 등 정신줄을 놓은 듯한 행동이 확실히 사라지기는 했지만... 결국 아지태 사건을 다시 친국했고 강 장자는 앞서 궁예로부터 경고를 들었음에도 친국 현장에서 궁예가 관심법을 썼다고 했음에도 끝까지 억울하다고 잡아뗀다. 결국 옆에서 기전과 능달이 차례로 죽어나가고[* 궁예가 먼저 기전에게 강 장자가 역모를 꾸몄느냐고 묻자 기전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대답한다. 궁예는 그를 마군이라고 판정하면서 그 자리에서 법봉으로 처단하고 이에 능달이 겁을 먹은 나머지 강 장자가 아지태와 함께 역모를 꾸민 것을 보았다고 말하며 살려달라고 빌지만 궁예는 이미 면죄받을 기회를 놓쳤다면서 역시 법봉으로 처단한다.] 궁예가 다시 한 번 윽박지르자 그제서야 겁에 질려 자신도 역모에 가담했으며 태자들을 보위에 올리려 했음을 시인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종간과 왕건은 그가 황후의 아버지이자 황제의 장인이기에 함부로 처형했다가는 관료들과 [[백성]]들이 크게 동요할 것이라는 이유로[* 작중 흐름을 보면 강 장자가 처형당한 후 얼마 뒤에 강 장자의 부인이 [[자결]]함으로써 결국 [[연화(태조 왕건)|강비]]와 궁예의 사이가 틀어져 강비와 두 태자들이 처형당하며 이후 산에 버려진 강비와 태자들의 시신을 [[형미]]대사가 거두어 장례를 치러주다 추포되어 처형당하는 연쇄 작용 끝에 결국 왕건의 [[역성혁명]]이 일어난다. 결론적으로 궁예가 강 장자를 처형한 것이 궁예 자신에게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자초한 셈이다.] 그를 살리려 간해 보았지만 궁예는 대역죄를 용서할 수 없다며 뜻을 굽히지 않고 그대로 처형시키라고 명령함으로써 결국 강 장자는 법봉에 맞아 숨을 거두게 된다.[* 궁예가 강 장자를 처형시킨 이유는 그동안 무너진 황실의 권위를 세우고 사람들에게 대권의 '대'자도 꺼내지 말라는 경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종간의 언급처럼 강 장자는 인물됨이 가벼운 [[소인배]]이지만 황제의 장인인만큼 그를 죽인다는 것은 상징성이 큰 행동이었다. 종간은 득보다는 실이 많은 행동이었다고 평가했으나 강 장자의 죽음 자체는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정도의 반응만 보였다. 이전에 살생부를 올렸을 때는 궁예의 병증이 심한 상태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였지만 아지태라는 끈이 떨어진 이후에는 별 위협이 되지 못한만큼 이런 평을 내린 것. 그리고 강 장자의 죽음으로 인해 부인인 [[연화(태조 왕건)|연화]]와의 관계가 완전히 파탄나고 말았다.] 이전까지는 궁예의 실정과 광기를 보면서도 줄곧 그를 걱정하던 연화도 아버지가 처형당한 소식을 들은 직후부터는 내관이나 시녀들 앞에서 인간 [[백정]]이라거나 미치광이라거나 하는 폭언을 서슴지 않게 된다. 얼마 뒤 어머니 백씨도 상심하여 식음을 전폐한 끝에 결국 목을 매어 자결하자 [[부부]] 사이는 최악에까지 치달았으며 결국 연화는 궁예에게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왕건에게 역성혁명을 권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궁예의 귀에 들어가고 강 장자의 양자를 잡아다 조사하기 시작했고 그 소식을 들은 연화는 궁예한테 악마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것이 결정타가 되어 결국 연화는 물론 두 태자까지 모조리 처형당하는 비극을 맞게 된다.[* 이때 궁예는 연화의 처형을 막겠다면 그것을 죄로 간주하여 같이 처형하겠다고 관료들에게 경고했다.] 물론 강 장자의 처형 이후에 갑자기 그리된 것은 아니었고 아지태가 죽기 전 발악으로 왕건과 연화의 옛 일을 들먹이자 시작된 의심으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 강 장자의 처형으로 인해 급격히 가속화되었던 것이다. 즉, 애당초 강 장자가 보위에 집착해서 아지태의 역모에 가담하지 않았다면 어마어마한 나비효과를 부를 정도로 화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사와는 차이가 조금 있는데 태조 왕건 연화 사후 나레이션을 보면 궁예가 어느날 갑자기 황후를 보며 관심법을 운운하며 '''네가 다른 사내랑 간통을 하니 웬일이냐'''라고 하였다 한다. 다만 견훤도 그러했듯 제작진은 궁예를 영웅으로 표현했기에 실록에서처럼 처참하게 광인으로 만들지 않았고, 그래서 이 대목을 빼는 대신 연화가 죽음을 자처하는 대목으로 바꾼 것이다. 궁예는 이후 연화와 태자들의 국문을 마무리 지은 후 강 장자의 양아들을 방면했으며 이후 강 장자의 가문과 양아들이 어찌되었는지는 언급이 전혀 없지만 같은 작가가 집필했으며 설정 일부를 공유하는[* 실제 역사에서는 의형제 그런 기록이 전혀 없는 박술희가 태조를 형님이라고 부른다거나, 정종이 자신의 내군 장군에게 궁예가 내군 장군(은부)에게 자신을 베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운운하거나 등.] 후속작 [[제국의 아침]]에서는 강기주라는 인물을 비롯한 신천 강씨 집안의 세력가들이 등장하므로 이를 통해 신천 강씨가 완전히 몰락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천 강씨가 완전히 몰락하지 않았던 것과 태조 왕건 작중에서 강 장자의 가족을 제외한 다른 신천 강씨 구성원들이 어떻게 되었다는 언급이 없었던 것을 보면 태조 왕건 작중에서 강 장자와 그 가족들만 화를 입었을 뿐 다른 신천 강씨 구성원들은 화를 입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